해병대에선 선임이 후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현재는 선진 병영문화 혁신으로 개선되었지만, 이전에는 사적 지시가 흔했고 장기자랑, 삼행시, 넌센스 퀴즈 등을 준비해야 했다. 또한 개인의 소유가 인정되지 않아서 관물함에 보급품, 간식 등을 넣어두면 사라지는 일이 빈번했다. 이외에도 휴가 통제, 암기사항 강요, 폭언 및 괴롭힘이 해병대에서 흔히 행해졌다.
앞서 말해두자면, 모든 해병대가 이런 건 아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은 내가 실무에 전입을 왔던 일병 1호봉 때부터 상병 3호봉 때까지(9개월간) 겪었던 일들의 일부이며,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해병대는 선후임간에 거리낌 없이 친하게 지내고, 화내거나 혼내지 않으면서 다 함께 열심히 하는 해병대였다. 아직까지 다음과 같은 부조리나 악습을 저지르는 선임이 있다면 분명 무사히 전역하지 못할 것이다.
해병대에서의 '대박'
'대박'이란 말은 기쁜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이지만, 군대에서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서 '대박'은 '대가리 박아'의 줄임말로 쓰였다. 문제는 이 말을 아무 때나 남용해서 선임이 정말 기뻐서 이 말을 쓰는 건지, 화가 나서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거다. 그걸 일병이 판단하는 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즐거운 순간에도 선임의 '대박' 한 마디에 후임들은 머리를 박아야 했다.
후임의 피복(군복) 착취
일부 선임들은 상태가 좋은 전역복을 얻기 위해 자신이 안 쓰는 옷과 '교환'이라는 명목하에 후임의 피복을 착취하곤 했다. 당시 피복 착취를 목격하고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라는 뜻을 비추었는데, 나에게 '너는 결혼식장에 이쁜 옷 입고 싶은 마음이 없냐?'라고 했다. 그런 마음은 당연히 있지만.. 이 사람은 진심으로 결혼식(전역식)에 남의 옷을 뺏어 입고 가고 싶은 걸까? 이후 여러 번 얘기한 끝에 어렵게 옷을 돌려받긴 했지만, 후임은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계사항
해병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계사항이 너무나 많았다. 선임이 뭔가를 주변 '필승! 감사히 쓰겠습니다.' 먹을 걸 주면 '필승! 감사히 먹겠습니다.' 질문할 때는 꼭 '-해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를 사용해야 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크게 혼이 났다. 왜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 채 단순히 지금까지 해왔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인계가 많았다.
막내로 살아가는 고충
전쟁이 나면 육군은 탱크를 보내고, 해군은 잠수함을 보내고, 공군은 헬기를 보내고, 해병대는 막내를 보낸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해병대에서는 막내에게 시키는 일이 많다. 얼마나 많은지 막내는 기상하면 취침 전까지 쉬는 법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불 켜고 커튼 치고 당직실에 인원 보고하고, 병기실셈 하고, 선임들 식사하는지 여쭤보고, 생활반 정리 정돈을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야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막내는 모든 일을 나서서 하도록 교육받는다. 조금만 쉬어도 혼나기 때문에 선임들이 하고 있는 일마저 뺏어서 해야 할 정도다. 나는 이런 막내 생활을 3개월 동안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눈이 충혈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생활반 인원이 다 같이 해야 할 일을 막내에게만 시키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최고 선임자가 된 이후부터는 다 같이 하는 걸로 바꾸거나 인계를 없애버렸다.
보통 어떤 무리나 '막내'라고 하면 모르니까 더 잘 알려줘야 하고, 잘 챙겨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해병대에서는 '종'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거 같았다. 부려먹기 편하게 교육하고, 나를 대신해 일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게 해병대의 '막내'였다.
시계 인계
일병은 반드시 시계를 차고 다녀야 했다. 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 군대 특성상 시계는 필수품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언제든 선임이 시간을 물어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건 상병부터였으며, 대답은 '현재 시각 -시 -분입니다.'로 해야 했다. 이때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혼이 났다. 나는 내가 직접 시간을 확인하는게 편해서 상병이 되어서도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선임들이 몇 번씩이나 시계를 풀어주어서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녔다.
신고할 수 없는 부대 분위기
해병대에서는 부당한 일을 겪어도 신고하면 '꼰잘'이라는 말로 피해자가 치사하고 나약하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가 선임이었기에 그 선임과 친했던 다른 선임들이 와서 더 심하게 가혹행위를 하는 등, 사실상 본인의 군 생활이 힘들어서 했던 선택이 오히려 군 생활을 더 힘들게 하는 아이러니함이 있었다. 군 생활을 잘 하려면 선임들과 친하게 지내야 했고, 선임들과 잘 지내려면 싫은 선임이라도 참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기엔 그곳에서 남은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고하고 난 다음엔?' 생각할 문제가 많았다.
의사 표현 금지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이 용납되지 않았다. 무조건 선임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으며, 더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그건 후임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틀린 생각이었다. 선임의 방식이 무식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것이더라도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의견을 내면 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결과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욕먹고 하는 거밖에 되지 않았다.
한참 후임이었을 때부터 본인 뜻대로만 하려는 게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에 선임이 된 이후로 다 같이 뭔가 하자고 하면 항상 후임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받았다. 이 일은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언제 시작하면 좋을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더 효율적이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었다.
감정과 표정 통제
개인의 생각과 의견뿐만 아니라 감정과 표정까지 통제했다. 웃는 거 금지, 찡그리는 것도 금지, 전부 다 금지.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웃고, 감정 없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건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꼭 내 안의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훈련단에서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몸이 힘들었는데, 실무에서는 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제제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졌다.
내가 선택한 해병대
타 군과 달리 해병대는 내가 직접 해병대를 '선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네가 선택해서 온 해병대다.' 이 말은 실제로도 사실이었기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선임아, 난 네 수발이나 들고 기분 맞춰주려고 해병대에 온 건 아니었다고! '선택해서 온 해병대'라는 말은 부조리를 당해도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훈련이 힘들고 고되어도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이겨내라는 말이다.
내가 각오하고 왔던 해병대는 이런 곳이었다. 비참하고,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비겁하고 양면적인 인간들이 널려 있는 끔찍한 악취가 나는 곳이었다. 정말 많이 깨졌고, 매 순간이 억울하고 괴로웠다. 몸과 마음은 지쳐서 상황은 더 나아질 거 같지가 않았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도움을 구했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이후로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힐수록 그들이 더 불쌍하게 느껴지고 나중에는 오히려 내가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그들 때문에 군 생활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들 때문에 군 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용기를 줄 것 같습니까?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습니까?
영화 '에반 올마이티' 중에서
18개월만 있으면 누구나 하는 전역이라지만, 절대로 쉽게 얻지 않았다. 군 생활 편하게 하는 법을 몰라서, 아니 알고 싶지 않아서 상 병장 때에도 일병처럼 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상 병장이 되었을 때에는 일병 때 겪었던 괴롭힘과 악습을 없애고, 이곳의 문화를 바꿀 용기가 있었다. 아무리 선임이라고 해도 행동에 잘못된 게 있다면 짚어주고, 노려보든 말든 굽히지 않았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후임을 보면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렇게 전역할 때가 되니 처음 실무에 왔을 때 기억하고 있었던 해병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해병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다! 내가 왜 해병대에 왔을까 후회만 했었지만 지금은 해병대를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해병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삶에 양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