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여러 형태의 근무가 있다. 지휘 통제실, 송신소, 입초, CCTV, 당직 분대장 등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군인이라면 전부 예외 없이 근무에 들어간다. 훈련병, 교육생일 때에는 불침번을 섰고, 실무에 온 지 2주째 되는 날(당시 일병 1호봉)부터 입초 근무에 들어갔다. 내가 당직 분대장이 된 건 상병 5호봉이었다.
당직 분대장 얘기를 하기 전에 입초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입초 근무는 경계와 통제가 목적이며, 2명 1개조 2시간 교대를 원칙으로 한다. 11개월 동안 휴가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3~4회 실시했으니 70~80회 정도 근무에 들어간 거 같다. 합산해 보면 100시간이 훌쩍 넘어가는데, 이 시간 동안 할 수 있었을 다른 일들을 생각하면 다들 어떻게든 근무에서 열외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심지어 근무 시간에 생활반에 들어가 자다가 적발되어 징계를 받은 해병도 적지 않다.
당직 분대장은 중앙 당직실에서 인원을 통제하며, 병기 실셈, 상황일지 작성, 환자 및 출타자 파악 등의 업무를 하며, 다른 근무와 비교했을 때 근무 시간이 길다. 당직 분대장은 '24시간 무수면'으로 당직실을 지킨다. 식사 시간 등을 제외하면 하루 중 21시간 정도는 당직실에서 보내는 셈이다.
당직 분대장으로 임명된 11월 중순,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잠을 못 자면 생활패턴이 망가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다는 건, 다르게 생각하면 24시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당직실에 앉아서 오전 7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 30분까지 꼬박 하루를 밤새워서 공부할 수 있었던 당직 분대장 근무는 당시 공부 시간이 부족했던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하루 종일 눈 붙이는 게 허용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근무 다음 날 OFF로 과업에 열외 되어 자유롭게 자고, 공부할 수 있었다. 또 매달 5번 정도 들어가는 근무 날에 큰 훈련이 있기라도 하면 오히려 내가 당직 분대장인 게 감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입초와 당직 분대장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입초를 선택할 것이다. 입초 근무는 1년 정도 서야 100시간 가까이 되는데, 당직 분대장에게 100시간은 한 달 치 근무 시간이다. 긴 근무시간만큼이나 책임감이 크고, 혼자 남은 새벽에 멈춰진 시계를 보는 것만큼이나 힘든 게 없다. 그러니 난 건강은 신경 안 쓰고, 토요일 근무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직 분대장 만큼은 피하는 게 좋겠다.
당직 분대장 근무를 서는 날에 많은 친구들이 필요한 거 없냐며 커피든 과자든 빵이든 뭐든 잔뜩 가져와 주었다. 매번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말려도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가져온 것들은 도저히 나 혼자선 다 먹을 수 없는 것이었고, 당직을 들어갈 때마다 계속 쌓여만 갔다. 먹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아지고 힘이 난다는 게 신기했다. 그게 당직을 서면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다. 다들 정말 고마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임이라
누가복음 6장 38절
근무를 선다는 건 군인으로서 필수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사명감을 갖고 하기란 쉽지 않다. 매일 힘겹게 버티고 고생하고 있는 모든 군인들은 존경받을 만하다. 우리가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밤을 새워가며 근무를 서고 있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